'석유 얼마나 남았나' 숨기는 까닭이…
[Cover Story] ■ 석유 패러독스
마르려면 멀었다? 바닥 가까워졌다?… 석유 매장량 '검은 장막'
짧게는 10년, 길게는 100년… 고갈·생산피크 예측 천차만별
석유전성기 종언 계속 연기… "값싼 석유는 끝"엔 의견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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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삭기자 hiro@hk.co.kr
- 입력시간 : 2012.08.25 02:36:26
- 수정시간 : 2012.08.25 23:11:25
2008년은 국제석유시장이 천국과 지옥을 오간 해로 기억된다. 중동 정세불안과 중국ㆍ 인도 등 신흥시장의 에너지 수요 증가로 그 해 7월3일 국제 유가는 140.05달러(두바이유 기준)를 찍었다. 이런 추세라면 유가 200달러 시대가 멀지 않았고, '제 3의 석유파동'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졌다. 값 비싼 기름은 다시금 석유 고갈 논쟁에 불을 댕겼다.
그러나 곧 리먼 브러더스 파산과 그에 따른 금융위기 여파로 유가는 불과 5개월 만에 37.61달러(12월5일)로 급락했다. 이후 유가는 조금씩 오르더니 2012년 현재 '100달러의 유가'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19세기 후반 이후 인류의 삶을 떠받쳐온 석유의 전성시대, 그 파티가 끝나가는 걸까.
석유재고 얼마나 남았나
유기체의 퇴적물인 석유는 무한대로 존재할 수 없다. 계속 퍼 쓴다면 언젠가는 바닥들 드러낼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채산성이 없다면 유정을 파서 기름을 계속 뽑아낼 리 없다. 때문에 석유 고갈 논란은 석유가 물리적으로 지구상에서 없어지는 시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생산량 감소와 함께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경제성 있는 자원으로서의 지위를 잃느냐의 문제로 봐야 한다.
현재 전 세계 1차 에너지 소비량에서 석유(순수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32%다. 주요 에너지원 중 가장 높은 점유율이지만, 그렇다고 압도적인 수치도 아니다.
석유의 파급력은 다름아닌 연관산업에서 나온다. 화학산업의 기초 원료는 물론, 섬유 플라스틱 등 우리가 먹고 쓰고 입는 대부분은 석유를 떼어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호모 오일리쿠스(Homo Oilicus)'라는 지칭이 괜한 말은 아닌 셈이다.
문제는 머지않아 경제적 관점에서 석유시대가 종언을 고할지, 아니면 먼 훗날에도 에너지 최강자의 위치를 공고히 할 지 여부이다.
불행히도 석유 고갈 시점에 대해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다. 5~10년 내에 석유생산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할 것이란 주장이 있는 반면, 100년이 지나도 수요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영구설까지 분석은 천차만별이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석유관련 자료는 모든 산유국에서 기밀에 속해 확인이 어려울뿐더러 정치적 특성까지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러시아에서는 석유 정보를 누설할 경우 최대 징역 7년형을 받을 수도 있다. 또 석유 잔존 매장량의 60%를 점유하는 중동 산유국의 석유 통계는 아예 추정이 불가능하다.
그나마 영국의 석유 메이저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 내놓은 추정치가 많이 인용되는 편이다. BP는 석유의 확인매장량을 약 1조2,400억배럴로 보고, 가채년수(확인매장량을 전년도 생산량으로 나눈 것)가 42년 정도 남았다고 예측했다. 현재 소비 속도를 고려할 때 40년 뒤면 석유의 수명이 끝난다고 판단한 것.
하지만 석유 고갈론을 기우로 치부하는 쪽에서는 BP의 전망이 중요한 변수를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당대의 기술과 경제적 여건만을 반영한 확인매장량은 탐사기술의 진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예컨대 1970~80년대 석유파동 당시의 40년 잔존설이 지금도 유효한 것은 기술발전으로 경제성 없는 광구를 새로 개발하고, 기존 유전의 추가 회수율(reseve growth)을 크게 높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1980년 29년에 불과했던 석유 가채년수는 2007년 41.6년을 기록, 오히려 증가 추세에 있다.
피크오일 논쟁 재점화
석유 비관론자들은 '피크오일(Peak Oil)'설을 내세워 석유의 시대는 종지부를 찍었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은 석유 생산이 절정에 이르는 지점, 다시 말해 석유 소비가 급증하거나 유전 개발이 부진해 증가하던 생산이 한계에 부닥치는 시기를 일컫는다. 석유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다가 특정 시점에서 급격히 줄어든다는 가설이다.
하지만 석유 고갈론만큼이나 피크오일의 도래 시기도 논쟁이 첨예한 사안. 이미 2006년 석유 생산이 정점에 도달(독일 에너지워치그룹ㆍEWG)했다고 보는 견해와 2060년은 돼 봐야 피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세계에너지협의회ㆍWEC)는 주장으로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제 누구나 "값싼 석유의 시대가 끝났다"는 데 동의한다는 사실이다. 환경단체들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이유가 어떻든 천정부지로 솟은 유가 탓에 생산피크 시기가 앞당겨진 만큼 석유가 공공재의 가치를 잃어버리기 전에 대체 에너지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논리다.
가격 외에 석유 생산의 이상 징후를 알리는 경고음도 도처에서 감지된다. IEA는 지난해 발간한 '세계 에너지 전망'에서 2035년까지 석유수요가 13.8%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거대 유전의 상당수는 성숙화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미 에너지부가 작성한 '허쉬보고서에는 "48개 산유국 중 33개국이 감산으로 돌아섰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총의 성능(개발 기술)만 좋아졌을 뿐, 정작 사냥감(석유)은 적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은 "석유도 초창기에는 엄청난 정책적ㆍ재정적 지원을 등에 업고 최고 에너지원의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며 "생산 부담이 계속 늘어난다면 석유에 들어갈 돈을 차라리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투입해 제2의 석유로 육성하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곧 리먼 브러더스 파산과 그에 따른 금융위기 여파로 유가는 불과 5개월 만에 37.61달러(12월5일)로 급락했다. 이후 유가는 조금씩 오르더니 2012년 현재 '100달러의 유가'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19세기 후반 이후 인류의 삶을 떠받쳐온 석유의 전성시대, 그 파티가 끝나가는 걸까.
석유재고 얼마나 남았나
유기체의 퇴적물인 석유는 무한대로 존재할 수 없다. 계속 퍼 쓴다면 언젠가는 바닥들 드러낼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채산성이 없다면 유정을 파서 기름을 계속 뽑아낼 리 없다. 때문에 석유 고갈 논란은 석유가 물리적으로 지구상에서 없어지는 시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생산량 감소와 함께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경제성 있는 자원으로서의 지위를 잃느냐의 문제로 봐야 한다.
현재 전 세계 1차 에너지 소비량에서 석유(순수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32%다. 주요 에너지원 중 가장 높은 점유율이지만, 그렇다고 압도적인 수치도 아니다.
석유의 파급력은 다름아닌 연관산업에서 나온다. 화학산업의 기초 원료는 물론, 섬유 플라스틱 등 우리가 먹고 쓰고 입는 대부분은 석유를 떼어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호모 오일리쿠스(Homo Oilicus)'라는 지칭이 괜한 말은 아닌 셈이다.
문제는 머지않아 경제적 관점에서 석유시대가 종언을 고할지, 아니면 먼 훗날에도 에너지 최강자의 위치를 공고히 할 지 여부이다.
불행히도 석유 고갈 시점에 대해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다. 5~10년 내에 석유생산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할 것이란 주장이 있는 반면, 100년이 지나도 수요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영구설까지 분석은 천차만별이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석유관련 자료는 모든 산유국에서 기밀에 속해 확인이 어려울뿐더러 정치적 특성까지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러시아에서는 석유 정보를 누설할 경우 최대 징역 7년형을 받을 수도 있다. 또 석유 잔존 매장량의 60%를 점유하는 중동 산유국의 석유 통계는 아예 추정이 불가능하다.
그나마 영국의 석유 메이저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 내놓은 추정치가 많이 인용되는 편이다. BP는 석유의 확인매장량을 약 1조2,400억배럴로 보고, 가채년수(확인매장량을 전년도 생산량으로 나눈 것)가 42년 정도 남았다고 예측했다. 현재 소비 속도를 고려할 때 40년 뒤면 석유의 수명이 끝난다고 판단한 것.
하지만 석유 고갈론을 기우로 치부하는 쪽에서는 BP의 전망이 중요한 변수를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당대의 기술과 경제적 여건만을 반영한 확인매장량은 탐사기술의 진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예컨대 1970~80년대 석유파동 당시의 40년 잔존설이 지금도 유효한 것은 기술발전으로 경제성 없는 광구를 새로 개발하고, 기존 유전의 추가 회수율(reseve growth)을 크게 높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1980년 29년에 불과했던 석유 가채년수는 2007년 41.6년을 기록, 오히려 증가 추세에 있다.
피크오일 논쟁 재점화
석유 비관론자들은 '피크오일(Peak Oil)'설을 내세워 석유의 시대는 종지부를 찍었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은 석유 생산이 절정에 이르는 지점, 다시 말해 석유 소비가 급증하거나 유전 개발이 부진해 증가하던 생산이 한계에 부닥치는 시기를 일컫는다. 석유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다가 특정 시점에서 급격히 줄어든다는 가설이다.
하지만 석유 고갈론만큼이나 피크오일의 도래 시기도 논쟁이 첨예한 사안. 이미 2006년 석유 생산이 정점에 도달(독일 에너지워치그룹ㆍEWG)했다고 보는 견해와 2060년은 돼 봐야 피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세계에너지협의회ㆍWEC)는 주장으로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제 누구나 "값싼 석유의 시대가 끝났다"는 데 동의한다는 사실이다. 환경단체들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이유가 어떻든 천정부지로 솟은 유가 탓에 생산피크 시기가 앞당겨진 만큼 석유가 공공재의 가치를 잃어버리기 전에 대체 에너지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논리다.
가격 외에 석유 생산의 이상 징후를 알리는 경고음도 도처에서 감지된다. IEA는 지난해 발간한 '세계 에너지 전망'에서 2035년까지 석유수요가 13.8%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거대 유전의 상당수는 성숙화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미 에너지부가 작성한 '허쉬보고서에는 "48개 산유국 중 33개국이 감산으로 돌아섰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총의 성능(개발 기술)만 좋아졌을 뿐, 정작 사냥감(석유)은 적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은 "석유도 초창기에는 엄청난 정책적ㆍ재정적 지원을 등에 업고 최고 에너지원의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며 "생산 부담이 계속 늘어난다면 석유에 들어갈 돈을 차라리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투입해 제2의 석유로 육성하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땅 → 바다 → 심해… 시추기술 혁신이 석유시대 연장
석유의 장래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는 시추기술의 혁신에 기댄 바 크다. 석유개발은 1970년대 이후 육상에서 해상으로, 2000년대 들어 다시 심해(深海)로 무대를 옮겼다. 대륙붕에서 시작된 해양 시추작업은 각종 특수 설비의 도입과 함께 비약적인 생산량 증가의 토대를 마련했다. 불가능으로만 여겼던 북해나 북극해 등 오지에서의 석유 채취가 마침내 실현된 것이다.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더 깊고 안전하게 석유를 뽑아낼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잠재적인 석유 가채량은 최소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수평굴착과 수압파쇄법 등 채굴 기술의 발달은 전혀 새로운 석유의 존재도 세상에 알렸다. 비전통 석유의 발견이 그것이다. 재래식 석유의 대비된 개념인 비전통 석유는 기존 유전 훨씬 아래에 위치한 암석이나 진흙, 모래 등의 틈에 섞여 있다. 오일샌드와 초 중질유, 요즘 각광받는 셰일가스 등이 대표적이다. LG경제연구소는 2010년 펴낸 보고서에서 "비전통 석유의 매장량은 약 8.5조~9조배럴로 증가하는 세계 석유 수요를 소화하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사실이라면 단순 셈법으로도 300년을 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석유의 미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고갈론을 반박하는 주된 이유도 비전통 석유의 개발 가능성과 경제성 때문이다. 고유가의 지속은 심해 유전개발 붐을 일으키고 시추 기술을 한층 업그레이드하는 결과를 낳았다. 해양 시추나 비전통 석유의 채굴은 기존 육상 유전에서의 작업보다 훨씬 복잡하고 위험이 크다. 당연히 비용도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셰일가스의 경우 개발ㆍ생산비용이 배럴당 40~60달러 정도 하는데, 아직은 원유에 비해 비싼 편이다. 그러나 유가 상승 덕분에 두둑한 실탄을 보유한 메이저 석유개발 업체들은 비용에 개의치 않고 대체 석유 찾기에 나서고 있다. 이는 드릴십(Drill Ship)의 달라진 위상이 말해준다. 드릴십은 심해 유전 시추에 쓰이는 선박 형태의 장비로 파도가 심하거나 수심이 너무 깊어 바다에 고정 구조물을 설치할 수 없는 문제점을 단박에 해결해 줬다. 단점은 대당 가격이 최고 1조원에 달할 만큼 초고가라는 점. 정유업계 관계자는 "드릴십은 워낙 가격이 비싸 하루 용선료만 5억원이 넘는다"며 "하지만 최근 자본력이 풍부한 엑손모빌과 BP 등 거대 석유회사들을 중심으로 이용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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