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조선과 관계가 있을 수도.
중국 상해에 살고 있는 우리 가족 : 殷(은)나라는 술로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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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은)나라는 술로 망했다?
중국인들은 삼황오제로부터 시작하여 하(夏), 은(殷), 주(周) 3개 고대국가를
갑골문. 당시 사람들은 점치는 것이 생활 그 자체였다. 문화수준과 기술수준
아마 이런 그림 아니었을까?
은왕조의 마지막 왕 주왕(紂王). 어떤 왕조이든지 마지막 왕은
자신들의 기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고대국가는 그저 전설
상의 국가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요. 적어도, 은나라 수도
殷墟(은허)에서 엄청난 양의 청동기와 갑골문 등이 발굴되어 우리들 눈 앞에
나타날 때까지는 말입니다.
엄청난 량의 청동기와 도기, 마차, 그리고 순장한 말과
사람들의 뼈, 무엇보다 3만 개가 넘는 갑골이 출토된 은허.
1899년이니까 청일전쟁에서 그 때까지 왜놈이라고 얕잡아 보았던 일본에 비참
하게 패망한 지 5년후, 그리고 1년후면 다시 의화단 사건이 일어나는, 매우 어수
선한 시기였습니다. 당시 국자감 총장 왕의영(王懿榮)이 말라리아에 걸려 고생하고
있었는데, 말라리아에는 용골(龍骨)이라는 것이 특효약이라고 하여 비싼 값에
팔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용골이라는 게 알고 보니 거북의 배나 등껍질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뭔가 글씨가
씌여있었지요. 아마도 금석학에 권위가 있는 국립대학 총장 왕의영이니까 알아
보았을 겝니다. 그는 아마 말라리아 때문이 아니라, 전설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나타날 지도 모른다는 흥분 때문에 열이 더 올랐을 것입니다. 여하간 이렇게
3천년 전의 전설이 우리 눈 앞에 현실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청동기에
기재되어 있는 명문을 조사한 결과 사마천의 사기에 있는 내용이 거의 틀림이
없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사기의 권위가 더 한층 높아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갑골문. 당시 사람들은 점치는 것이 생활 그 자체였다. 문화수준과 기술수준
이 낮아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있는 고대 인류의 공통적인 현상이었을까?
그런데, 은허의 소재지가 지금의 하남성 안양현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겠습니다.
당시 문화의 중심지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중원지방으로부터 직선거리로 900km
나 동쪽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지요. 주나라는 지금의 서안 부근의 호경을 도읍으로
하고 있었으니까, 당시의 문화 중심지인 은허로부터는 엄청나게 먼 촌구석이었던
셈입니다. 말이 900km지 직선거리니까 실제로는 얼마나 될 지 알 수 없는 일이고
더구나, 귀족들이나 마차를 타고 다니던 고대였으니 이 거리는 엄청난 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 이런 그림 아니었을까?
은나라가 멸망하고 동이족은 더 동쪽으로 밀려난 게 아닐까?
중국의 선생님들 교육자료. 상나라는 탕왕이 건국하여
중국의 선생님들 교육자료. 상나라는 탕왕이 건국하여
6백년을 지속하였으며, 주왕에 이르러 멸망했다는 내용.
이런 지역적인 차이 말고도 은나라와 주나라는 상당히 다른 점이 많습니다. 당시는
부족국가 상황이었으므로 전혀 다른 부족이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재미
있는 건 은왕조 시조의 탄생설화입니다. 은의 시조 설(契)은 어머니 간적(間狄)이
검은새의 알을 삼키고 나서 태어났다는 것이 그것인데, 이런 종류의 난생설화는
우리 민족에게는 대단히 일반적인 것이지요. 이는 은나라가 동이족이라고 하는
주장의 주요 근거이기도 합니다.
술을 먹지 말라
이는 주 무왕이 동생을 위나라에 분봉하면서 신신당부한 내용입니다. 주 무왕은
은나라가 술 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주나라는 절대로 술을 가까이
하면 안된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서경에 보면 당시
주 무왕이 동생에게 했다는 당부의 내용이 酒誥(주고)라는 제목으로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가무음곡에 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술을 좋아한
민족은 모두 동이족이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여하튼 주나라와 은나라는
근본부터 다른 민족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어 보입니다. 주 무왕은 술은
제사 때만 먹을 것이며, 만약 평소에 술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형에
처하겠다는 엄명을 내립니다. 주나라는 아마도 매우 재미없는 나라였을 겁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은나라 사람들은 술을 먹더라도 잘 타이르라고
한 점입니다. 술이라는 게 중독성이 있으므로 금방 끊을 수 없다는 점을 고려
한 것이라고 한다면 타당성이 있는 지시이지만, 은나라 사람들은 술을 먹고
망가져도 괜찮다는 생각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은왕조의 마지막 왕 주왕(紂王). 어떤 왕조이든지 마지막 왕은
음란하지 않으면 멍청하다. 역사가 근본적으로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주왕에 대한 기록 또한 그러하다. 그리고 단골메뉴 중의
하나 famme fatal이 등장한다. 달기가 그녀이다. 이 그림은
아마도 주왕에 대한 평가를 달리 해 보고자 하는 시도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전혀 포악하거나 멍청해 보이지 않는 온화한 모습이다.
누군가 역사에 있어서 상상의 나래를 펴기 가장 적당한 것이 바로 동북아의
고대사라고 했다고 합니다. 은왕조가 동이족이었다는 점을 명백하게 증명하는 건
불가능해 보이지만, 중국이라는 큰 땅에 여러 민족이 함께 동시대를 살아갔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고증이 가능한 시대에 들어서도 중국
이라는 큰 땅은 여러 민족들이 각자의 삶을 일궈낸 터전이었구요.
지금도 중국은 56개나 되는 민족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나라입니다. 스스로
한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 고려하면 사실은
백 개 혹은 그 이상의 민족들로 구성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아주
오랜 옛 날, 초나라나 오, 월과 같이 남방에 있었던 국가들의 백성들은 당연히
한족이 아니었을 겝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요? 모두 한족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중국 최후의 봉건왕조인 청나라는 또 어떻구요. 여진족이 세운
나라지만, 지금 그 왕조의 지배자들은 어디에 있나요?
요즘 우리가 흥분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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