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September 3, 2012

니아, 젤리빈…IT ‘작명’ 뒷담화


니아, 젤리빈…IT ‘작명’ 뒷담화
by 오원석 | 2012. 09. 02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 쓰인 구절이다. 시구의 의미를 해석하는 방법이야 각양각색이겠지만, 이름이 중요하다는 뜻일게다.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그저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했으니 말이다.
자고 일어나면 뒤바뀐다는 각박한 IT 세상이라고 해서 이름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간략하게 숫자로 이름을 대신하기도 하고, 최대한 멋스러운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기도 한다. 제품이든 서비스든 이름의 중요성을 알고 사용자에 다가가 의미 있는 제품이 되겠다는 노력이다.
우주에서 떨어진 이름
제품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이름은 우선 멋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삼성전자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를 떠올려보자. 갤럭시는 은하수를 뜻하는 영어 단어다. 스마트폰이 은하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발음은 썩 멋지게 들린다. 제품 사양이나 중류에 따라 ‘갤럭시S’나 ‘갤럭시노트’, ‘갤럭시탭 10.1′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 이전엔 ‘옴니아’가 있었다. 옴니아는 ‘모든 것’을 뜻하는 영어식 접두어 ‘옴니(omni)’에서 따왔다. 삼성전자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우 모바일 운영체제(OS)를 이용해 모든 기능을 쓸 수 있는 스마트폰이라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소한 이름을 짓는데 있어서는 멋만 부린 것은 아닌 셈이다.
삼성전자는 독일 현지시각으로 8월29일, ‘아티브(ATIV)’라는 새 브랜드도 소개했다. MS의 ‘윈도우폰8′과 ‘윈도우8′, ‘윈도우8 RT’ 등 윈도우 OS를 얹은 기기를 뭉뚱그린 이름이다. 갤럭시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아티브S’나 ‘아티브탭’ 등으로 이름을 바꿔 시리즈로 기획한다는 계획이다.
아티브라는 말이 생뚱맞다. 자세히 보면, 삶을 뜻하는 라틴어 ‘비타(VITA)’를 거꾸로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가 인간의 삶에 녹아들도록 하겠다는 의지다. MS와 손잡고 옴니아에서 실패를 맛본 삼성전자가 ‘삶’에서는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삼성전자가 갤럭시를 갖고 있다면, 팬택은 ‘베가’를 만들고 있다. 베가는 거문고자리의 1등성을 뜻하는 말이다. 동양에서는 ‘직녀성’으로 불리는 별이다. 우주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점에선 삼성전자와 팬택이 닮은 점이 많다.
지금은 ‘베가’라는 이름으로 통일됐지만, 팬택은 베가 이전 ‘시리우스’라는 스마트폰도 만든 적이 있다. 역시 우주에서 영감을 얻었다. 시리우스는 큰개자리 1등성의 이름이다. 큰개자리 1등성 브랜드는 포기하고, 거문고자리 1등성으로 브랜드를 통일한 셈이다. 팬택도 베가 이름 뒤에 빠르다는 뜻의 ‘레이서’나 알파벳 ‘S’ 등을 붙여 베가 시리즈를 넓히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베가는 은하수(갤럭시)에 포함된 별이다. 삼성전자 갤럭시가 베가보다 더 큰 시장을 갖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이름 덕이 아닐까.
‘갤럭시’는 은하수(배경), ‘베가’는 거문고자리에 있는 가장 밝은 별이다.
숫자는 단골손님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홀수 3, 5, 7로 이어지는 이름을 가진 자동차를 떠올리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독일 자동차 브랜드 BMW가 1부터 7까지 홀수로 이어지는 승용차 이름을 갖고 있다. 배기량에 따라 자동차 이름을 짓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BMW의 숫자는 베기량과 관계가 없이 등급을 나누기 위한 이름이다. 비슷한 예로 독일 자동차 브랜드 아우디는 A4, A6, A8로 이어지는 자동차 이름을 갖고 있다.
IT 제품 중에서도 이 같은 숫자 이름이 녹아든 제품이 많다. 인텔의 3, 5, 7 전략이다. 인텔은 지난 2011년 출시한 샌디브릿지 프로세서에 3부터 7까지 홀수 숫자를 이름으로 지었다. i3는 그 중 성능이 가장 낮은 제품이고, i7은 최고 성능을 내는 프로세서다. 2012년 선보인 아이비 브릿지도 i3부터 i5, i7으로 이어지는 샌디브릿지 프로세서의 이름을 그대로 계승했다.
인텔의 영원한 경쟁업체 AMD의 작명법이 재미있다. AMD의 작명법을 인텔과 비교해 보면 의미심장하기까지 하다. AMD는 라노와 트리니티에 기반을 둔 AMD 퓨전 APU 프로세서에 A4, A6, A8 이름을 붙였다. 인텔이 BMW 자동차와 비슷한 이름을 붙인 이후 AMD는 아우디의 짝수 숫자에서 영감을 얻은 것은 아닐까. AMD가 인텔 프로세서 이름에 숫자 1씩 더해 이름을 붙였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아우디 대신 벤츠나 슈퍼카 브랜드에서 이름을 따 왔다면 시장 점유율이 조금은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인텔과 AMD 관계자 모두 숫자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숫자를 이름에 쓰는 것이 간단해서인지, 유독 프로세서 업체 중 숫자 이름을 가진 업체가 많다. 영국 프로세서 디자인업체 ARM도 모바일프로세서에 널리 쓰이는 코어텍스 시리즈에 숫자를 붙인다. ARM 코어텍스-A8과 쿼드코어 모바일 프로세서 제작에 많이 쓰이는 ARM 코어텍스-A9 등이다. ARM 코어텍스-A9 이후 디자인에는 ARM 코어텍스-A15라는 이름이 붙었다.
ARM 코리아 관계자는 “코어텍스 시리즈의 숫자 이름은 성능 차이를 뜻하는 것은 맞지만,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숫자는 성능을 구분하기 위한 것일 뿐, 8이나 15 같은 숫자 자체에 큰 뜻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인텔 샌디브릿지와 아이비 브릿지 프로세서엔 홀수 숫자가 쓰이고(왼쪽), AMD는 4부터 8까지 짝수 숫자를 쓴다.
영웅, 과학자, 인조인간……
만화영화 영웅의 이름에서 제품 이름을 따오는 경우도 있다. 엔비디아의 모바일 프로세서 제품군이 영웅 이름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경우다. 현재 엔비디아의 주력 모바일 프로세서는 ‘테그라3′이지만, 테그라 이후 모바일 프로세서 시리즈엔 ‘칼엘’과 ‘웨인’, ‘로건’, ‘스타크’ 등의 이름이 붙여질 예정이다. 칼엘은 슈퍼맨의 본명이다. 지구에 오기 전 아기 슈퍼맨의 이름이란다. 웨인은 억만장자 브루스 웨인으로 슈퍼히어로 ‘배트맨’의 본명이고, 로건 역시 ‘X맨 울버린’의 본명이다. 스타크도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에서 따왔다.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 제품군 지포스 시리즈는 아키텍처 이름을 과학자 이름에서 따오고 있다. 2011년까지 지포스 그래픽카드 아키텍처를 담당했던 ‘페르미’는 상대성 이론을 연구했던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에서 따왔다. 페르미 아키텍처 이후 엔비디아가 지난 6월 선보인 ‘케플러’ 역시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에서 빌려온 이름이다.
영웅이나 과학자같이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과 비슷한 대상에서 이름을 따온 경우도 있다. 공상과학 속에서 등장하는 로봇 안드로이드에서 이름을 따온 구글이 대표적이다. ‘안드로이드’는 사람의 형상을 한 로봇을 뜻한다. 소설가 필립 K. 딕이 쓴 공상과학소설 ‘안드로이드도 전기양을 꿈꾸는가’라는 소설의 제목에도 들어가 있다. 한마디로 인조인간이다. 스마트폰 운영체제 이름으로 쓰기에 잘 어울린다.
만화에 등장하는 영웅 ‘아이언맨’의 본명은 ‘토니 스타크’(왼쪽), ‘안드로이드’는 인조인간 로봇을 뜻한다.
음식, 지명, 동물 이름도 선호해
구글 안드로이드 OS는 OS 자체 이름뿐만 아니라 버전별 작명법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안드로이드 버전 1.5는 ‘컵케익’이라는 코드명으로 불렸고, 1.6엔 ‘도넛’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2.1 버전엔 ‘에끌레르(이클레어)’라는 프랑스의 빵 이름이 붙었다. 2.2 ‘프로요’는 프로즌 요거트를 줄인 이름이고, 2.3 ‘진저브레드’는 사람 모양의 생강빵이다. 3.0은 ‘허니콤’, 4.0은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앞으로 나올 버전 4.1에는 ‘젤리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안드로이드 버전 이름을 살펴보면, 모두 달콤한 먹을거리라는 점 외에 공통점이 한 가지 더 있다. 영문 알파벳 순서를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알파벳 ‘A’와 ‘B’는 없고, ‘C’부터 등장한 이유가 있을까. A와 B로 시작하는 안드로이드 버전은 OS 개발 초기 단계에서 폐기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구글코리아쪽 설명이다. 실제로 일반 사용자와 제조업체가 쓸 수 있도록 OS 개발 API가 공개된 것은 1.5 버전 컵케익 부터다. 음식 이름으로 코드명을 통일시킨 것도 모자라 알파벳 순서까지 따르다니, 공대생 성향이 짙은 구글 개발자들의 편집증은 아닐까. 알파벳의 마지막 문자인 ‘Z’까지 모두 이름을 쓴 이후 구글이 안드로이드 버전 이름을 어떻게 바꿀지도 관심사다.
지명이나 지형지물은 IT 환경에서 특히 자주 쓰이는 이름이다. 이미 한 번 등장했지만, 인텔의 ‘샌디브릿지’와 ‘아이비 브릿지’가 대표적이다. 샌디브릿지의 원래 코드명은 히브리어로 다리를 뜻하는 ‘게셔(gesher)’였다. 이스라엘의 한 정당과 이름이 같아 게셔라는 이름 대신 샌디브릿지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비 브릿지도 다리 이름이다. 아아비 브릿지는 영국 데본 카운티 지방에 있는, 13세기 지어진 다리다. 인텔은 펜티엄 시절부터 ‘데슈츠’나 ‘멘도시노’, ‘콘로’, ‘캔츠필드’ 등 지명에서 프로세서 코드명을 따왔다.
동물 이름에서 코드명을 따온 IT 제품은 없을까. 애플의 맥 컴퓨터 운영체제 OS X 버전별 이름이 유명하다. 2001년 애플이 선보인 맥 OS X 버전 10.0의 이름은 ‘치타’였다. 10.1은 ‘퓨마’, 10.2 버전엔 ‘재규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10.3 버전엔 검은 표범을 뜻하는 ‘팬더’라는 이름이 붙었고, 10.4 ‘타이거’, 10.5 ‘레오파드’, 10.6 ‘스노우 레오파드’를 거쳐왔다. 10.7 버전에서 ‘라이온’을 거쳐 애플이 지난 7월25일 정식 출시한 최신 OS X 버전 10.8은 ‘마운틴 라이온’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애플 맥 OS 이름은 모두 고양이과 동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버전이 높아질수록 더 포악한 동물에서 이름을 빌려 오는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사자와 산사자보다 강한 고양이과 동물이 버전 10.9에서 등장할지 지켜보자.
구글 안드로이드 OS 버전 4.1의 코드명은 ‘젤리빈’(왼쪽), 애플 OS X 버전 10.8은 ‘마운틴 라이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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